칼럼(Column)2014.12.25 23:27

프랑스에서 몇년간의 유학생활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생활한지 반년이 지났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물었다.


"프랑스 학교를 졸업했으면, 거기서 취직하지 그랬어요? 거기가 한국보다 훨씬 살기 좋잖아요."


프랑스가 한국보다 살기 좋다라... 애초에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고, 프랑스에서 태어났으면 그렇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살기 좋은' 프랑스 생활에 적응하는데 1년이상 걸린 것 같다.


각종 행정처리는 지나치게 느렸고,  음식값이 비싸서 외식은 금물이고, 밤늦게 문을 여는 상점이 없어서 늦게까지 놀 곳도 없었다. 지하철에는 오물 냄새가 진동하고, 파리 중심에서 멀어지면 열차도 자주 없다. 인터넷으로 물건을 주문하면 며칠씩 걸려서야 배달이 되고, 인터넷 속도도 느리다. 일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대충대충'이고, 고객에 대한 태도는 '설렁설렁'이다. 길거리에서는 항상 소매치기의 위협을 조심해야 할만큼 치안도 별로다.  솔직히 어떻게 프랑스가 한국보다 잘사는 선진국으로 분류되는지 의아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반년이 지난 지금, 너무 편하다. 행정처리는 10분이상 걸리는 법이 잘 없고, 고객센터 직원은 나를 왕처럼 대해준다. 24시간 문을 여는 곳은 편의점, 식당, 카페, 술집 등 마음만 먹으면 밤새 노는 것도 쉽다. 지하철은 쾌적하고, 화장실은 어디에나 있으며, 일하는 사람들은 책임감이 넘친다. 대낮에 소매치기 하는 사람들은 찾기 어렵고, 치안은 대체로 안전하다...


한국이 정말 살기 '편한' 나라라는 것을 프랑스를 다녀와서 제대로 알았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는가. 고객센터, 식당, 거래처 등에서 왕처럼 대접받을 수 있는 이유는 내가 누군가에게 똑같이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택배가 하루만에 도착하는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배달기사들의 직장이 위태위태하기 때문이고, 택배비가 저렴한 이유는  배달기사들의 월급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식당의 음식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이유는 사람들이 평균 식사시간이 매우 짧아 자리 회전율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의 가게들이 늦게까지 문을 여는 이유는 그만큼 늦게까지 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의 편함은 쉼 없이 자본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기업들의 욕망과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더 벌어야 하는 보통 사람들의 현실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면서 생기는 부산물이다.


편안함은  불편함을 완화시켜준다. 그래서 불편함의 본질적인 원인들은 잘 해결되지 않는다. 주당 노동시간이 OECD 국가 중 1등을 달성한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선두권을 양보할 기미가 보이지 않고, 국정원 댓글 사건과 같이 국가권력이 국민을 우롱하는 일은 이미 익숙한 현실이다. 수십년간 유지되어왔던 입시교육체제는 급변하는 디지털 세상속에서도 공고히 잘 유지되고 있으며, 국민들이 모여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일은 국가 체제에 반하는 일로 간주되기 십상이다.


프랑스는 어떤가. 근본적인 불편함에 대해 프랑스 사람들이 대처하는 방식은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


- 약 7000여명의 고등학생들은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학생이 이민당국에 범죄자처럼 붙잡혀 코소보로 추방되자 시위에 참가했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길거리로 나가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프랑스 학생들에게는 흔한 일이다. (MBC)


- 프랑스 사람들이 사회에 불만이 있을때는 선거를 통해서 뚜렷하게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도 대통령 선거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프랑스의 유권자 중 약 80%가 자신의 투표권을 행사해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한다. (Wikipedia)


- 동네 서점들이 아마존과 같은 대형 서점에 생존이 위태해지자 이에 대한 시위를 벌였고, 결국 아마존이 프랑스 고객에게 5%의 할인과 무료배송을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이 프랑스 국회에 통과되었다. (로이터 요약)


- 최근 한국에서 벌어진 '철도파업' 때문에 일반 시민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뉴스가 많은데, 철도노조가 파업을 하는 것은 프랑스에서 아주 흔한 일이다. 철도 파업을 하면 불편한 것은 한국과 마찬가지지만 자신을 불편하게 만든 대상이 노조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노조와 적절한 타협점을 찾지 못한 기업에게도 책임을 묻는다. (Franceblue)


동네 서점들이 인터넷 서점들에 대한 규제를 입법하고, 노조들이 자주 파업을 하고, 학생들이 시위에 나가는 것이 항상 바람직한 방향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개개인이 느끼는 본질적인 불편함에 대해서 서로 연대하고, 이를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주장한다.


반면 한국 사람들에게 근본적인 불편함이란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다.  어떤 조직에 속해있던지 근본적인 불편함에 대해서 조용히 '좋게 좋게' 넘어가는 것이 일상화 되어있다. 그래서 집, 학교, 회사 어디에서도 자신들의 불편함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는다. 이렇게 온몸으로 흡수한 불편함을 편함으로 푼다. 주변에는 24시간 운영하는 카페, 술집, PC방 등의 유흥업소가 즐비하고, 인터넷에는 끊임없이 즐길 컨텐츠가 넘친다.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처리되고, '돈'만 있으면 즐길 것이 무한하다. 소소한 편안함을 위해 근본적인 불편함을 참고사는 착한 국민들이 모여 사는곳, 바로 대한민국이다.


안녕들 하십니까.


*해당글은 Zinol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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