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Column)2012.05.14 18:58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은 숨을 쉬는 것이다. 숨을 쉬면서, 우리는 몸 안에 있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산소를 흡입한다. 이를 통해 심장은 뛰고, 피가 흐르며, 우리는 삶을 유지한다. 언제나 그렇지만 인체는 매우 신비하다. 숨을 쉬는 것이 얼마나 생명에 필수적인 요소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이 글은 인체에 대한 것은 아니다. 몸이 아닌 마음의 ‘숨’에 대한 것이다.
 

삶의 속도는 누구나 조절할 수 있지만, 또 그렇지 않기도 하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의 삶의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다. 냄비 속에 천천히 끓어오르는 물처럼 인생의 속도는 그렇게 빨라진다. 때로는 끓는 물처럼 삶에 모든 것을 깊고, 뜨겁고, 그리고 빠르게 경험한다. 하지만 그 물은 언젠가 넘쳐 흐른다. 바로 그 시기에 우리 마음은 신호를 보낸다. 숨을 쉬어야 한다고. 숨을 돌리는 것은 냄비 속에 증발한 물을 다시 채우는 일이다.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는 지가 ‘삶’이라는 냄비의 크기를 결정한다. 계속 해서 물을 끓이는 사람은 냄비를 바꿀 여유가 없다. 그 사람의 냄비 크기는 항상 유지될 뿐이다. 줄어드는 물에 조바심 내면서.
 

나를 포함한 젊은 친구들은 ‘숨을 쉬는 것’이 늦게 가는 것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끓는 물과 냄비 이야기는 충분히 했으니 친숙한 언어로 바꿔보자. 숨을 쉬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죽는다. 마음이 ‘숨’을 쉬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가? 마음이 죽는다. 마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하고 싶은 것이 없어진다. 삶이 공허해 진다. 대부분의 우울증 증세가 그러하다. 사실 많은 젊은이들이 그런 것 같다. 부족한 식견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비포장 도로였던 세상이 점점 더 고속도로가 깔린 곳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신호등도 없고, 속도 제한도 없는 아우토반 같은 그 곳에서 끊임없이 달리다 많은 청춘들이 죽어가고 있다.
 

요즘 청춘들은 쉬는 것을 낯설어 한다. 쉬는 것을 게으르다고 생각한다. 쉬는 것은 뒤쳐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쉴 때는 쉬지 않을 때를 생각한다. 다시 말해, 쉴 때 조차 쉬지 않는 것이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언제 쉬어야 하는지,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 우리는 ‘쉬는 것은 나쁜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세상에서 가장 빠른 성장을 이룬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놀라운 일은 아니다.
 

숨을 쉬면 어떻게 되는가? 마음이 산다. 하고 싶은 게 생기고, 엉뚱한 생각을 한다. 발칙한 상상을 한다. 공상을 하는 시간도 많아지고, 주변 사람들과도 웃으며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다. 결국, 인생의 대단한 결정과 변화들은 이런 (쓸데없어) 보이는 기간에 결정된다.

되돌아 보면, 우리는 삶에서 두 가지 순간을 잘 기억하는 것 같다. 뜨거웠던 순간과 뜨겁지 않았던 순간. 전자만을 기억할 것 같지만 인생의 대부분은 후자가 차지한다. 무미건조해 보이는 일상이 우리의 인생의 대부분 채우고 있다. 추억을 보라. 대부분의 추억들은 우리들의 잃어버린 일상들이다. 지금은 내 삶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지만, 내 삶을 정신적으로 떠받치는 아름다운 추억들.
 

자, 여러분 냄비의 물이 끓고 있다. 물이 넘쳐 흐르고 있다. 마음이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냥 두지 말라. 언젠가는 그 신호에 무감각해져서 그냥 마음이 죽은 삶을 계속 살아갈지도 모르니까. 잠들어 있거나, 죽은 마음에 ‘숨’을 공급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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