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예술/책/여행2011.01.30 19:34

P. 198 제레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 중 일부 내용 발췌..

 이처럼 자유를 놓고 뚜렷하게 갈리는 두 가지 입장은 힘과 용기의 본성에 대해서도 서로 다르게 해석한다. 자유라고 하면, 보통 독립적이고 용감한 것을 떠올린다. 미국 국가 [성조기여 영원하라]자유의 땅, 용감한자의 조국이라는 구절로 끝난다. 자유를 싸워서 쟁취하는 어떤 것으로 생각하는 시대에 용기는 윈스턴 처칠의 말처럼 우리 운명의 선장이고 우리 영혼의 주인으로 자주적 결정을 내리는 신호가 된다. 많은 자유의 투사들은 자유를 불굴의 의지와 동일시했다. 이는 미국 개척사가 칭송하는 자족적이고 자립심이 강한 인간의 모습이다. 황무지에서 홀로 땅을 개간하는 개척자, 카우보이들은 진정한 자유의 영혼이라는 낭만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곤 했다.

 개척 정신은 분명 높이 찬양할 만하지만, 실체화 학파는 다른 입장을 취한다. 이들은 진정한 자유는 불굴의 정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취약한 점을 드러내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자유가 자신이 갖고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충분히 발휘하는 능력이고, 한 사람의 인생을 평가하는 기준이 그 사람이 맺는 관계의 친밀감, 범위, 다양성이라면, 취약한 점이 많을수록 사람들과 의미 있고 허물없는 관계를 맺는 데 더 개방적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취약하다는 것은 나약하거나 남의 제물이 되기 쉽다는 뜻이 아니라 깊은 교제를 통해 마음의 문을 열고 생각을 주고 받는다는 뜻이다.

 진정한 용기는 자신을 숨김없이 상대방에게 드러내는 것이라고 실체론 옹호자들은 말한다. 용기는 자신의 삶의 가장 본질적인 세부 사항까지 상대방의 손에 맡길 의향이 있다는 말이다. 취약하다는 것은 같은 인간을 믿겠다는 것이다. 그 믿음은 다른 사람이 당신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할 것이라는 믿음이며, 당신이 상대방의 편리를 위한 목적에 이용되거나 함부로 취급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세상에서는 누구도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 세상에서 자유는 당장 부정적인 것이 되고 상대방으로부터 마음을 닫고 스스로 고립되는 능력을 의미한다.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있고 불신을 조장하고 싸움을 부추기는 권위적인 사회에서 자유 정신은 기를 펼 수 없다.

 따라서 자유의 진정한 토대는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다. 합리주의자들이 주장처럼 자유는 결코 혼자서 해결하는 일이 아니다. 서부 영화 존 웨인 같은 영웅의 활약이 아니라, 자유는 함께 나누는 깊은 경험이다. 서로를 믿고 마음을 열고 같이 누리고 번창하려 애쓰는 투지를 공유할 때 우리는 진정 자유로워 진다. 그때 신뢰는 공감 의식이 확장 될 가능성을 향해 문을 활짝 열고 보다 허물없는 영역으로 들어간다.

 실체적 자유를 몸으로 여실히 보여준 사람은 다름 아닌 넬슨 만델라였다. 23년 넘게 감옥에 갇혀 지내면서 툭하면 독방에 갇혔지만, 그는 백인 교도관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는 그들을 개인적 고통을 안고 있는 하나의 고유한 개인으로 바라보았고 다정한 태도로 그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불굴의 의지와 고고한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따뜻한 인간이 되기를 택했다. 교도관들은 그런 그의 모습을 통해 하나의 인간을 알아 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혐오감이 녹으면서 교도관들은 그를 존경하고, 마침내 자신들과 다르지 않은 고통을 지닌 동료 인간으로 그를 신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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